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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래요.

방랑시인 김삿갓유적지

by 무던 2013. 7. 9.

영월로 문상갈일이 생겨서 일찍 채비를하고 김삿갓계곳으로..

 

 

인사말

김삿갓 마을 방문을 환영합니다

일생

김삿갓으로 불리는 난고 김병연은 1807년(순조 7년)부터 1863년(철종 14년)까지 방랑시인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인물입니다. 조부는 선천부사 익순이며 아버지인 안근과 어머니 함평 이씨 사이의 2남으로 경기도 양주군에서 출생하였고
이름은 병연, 호는 난고, 별호는 김삿갓 또는 김립으로 불리웁니다.

권문세족인 안동 김씨 가문이었던 집안이 몰락하게 된 것은 조부인 선천부사 김익순이 홍경래의 난을 평정하지 못하고
항복해 역적으로 몰렸기 때문입니다. 후일 조부의 죄가 멸족에서 폐족(조상이 큰 죄를 짓고 죽어 그 자손이 벼슬을 할 수
없게 됨)으로 감형되었으나 세인의 천대로 모친은 가족을 이끌고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으로 이주하여 살았습니다.

김병연은 가문의 내력에 대한 진상을 알지 못한 채 학업에 정진하다 영월도호부 과거(백일장)에 응시하여 장원급제를
하게 되는데, 시제가 바로 ‘논정가산충절사탄김익순죄통우천(論鄭嘉山忠節死嘆金益淳罪通于天)’으로 가산의 정공이
죽음으로 충정된 절개를 지켰음을 찬양하고 적에게 항복한 김익순의 비겁한 죄를 하늘이 알고 있음을 공박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후일 모친으로부터 집안 내력을 듣고 조상을 욕되게 한
죄인이라는 자책감에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 어둔으로 옮겨
은둔생활을 시작하였으며 이후 죄인으로 푸른 하늘을 바로 볼 수
없다하여 삿갓에 죽장을 짚은 채 방랑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금강산을 시작으로 서울, 함경도, 강원도, 황해도,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평안도, 제주도 등 전국 각지를 떠돌다가 전남 화순군
동북면구암리 정시룡 댁에서 1863년 3월 5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합니다.

이후 3년 뒤 아들 익균이 화순의 초분지를 찾아 지금의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현 김삿갓면) 와석리 노루목 기슭으로
이장하였습니다. 그 후 김병연의 묘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있다가 116년만에 발견되어 보존되어 오다가 현재의 모습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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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세계

김삿갓의 시들은 유유자적한 귀족적인 시작(詩作)의 태도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인간 본연의 서정과 빈궁한 평민들의
생활상에 시야를 돌립니다. 이로써 한시의 평민화 경향을 더욱 발전시켜 민중적인 차원으로까지 확대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시 표기에 있어서의 파격은 권위주의로서의 한시 영역을 붕괴시키고 골계미와 해학미라는 새로운
미학으로 한시의 지평을 넓혔습니다.

파격, 해학과 풍자
이 형식의 파괴는 한글혼용, 순 한글시의 형태로 나타났으며 한글의 사용은 이후 현대 문학 조류의 시작인 개화기 문학의
경항과 비추어 볼 때 한글시를 짓는 단초를 열어 준 것입니다. 이러한 형식의 파괴는 그의 40여편의 희작시에서 극명하게
나타납니다.
김삿갓 시의 백미는 바로 해학성과 풍자성에 있는데 잘난 척하는 촌부(村富)나 훈장에게 특휴의 야유와 곡설(曲設)로
풍자하고 힘없는 노인과 부녀자에 대해서는 동정적인 입장에서 바라보았습니다. 김삿갓 시의 풍자성과 해학성은 새로운
삶의 형식이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풍자는 대상에 대한 부정으로써 악덕하고 부조리한
인간과 사회에 대한 부정이었습니다. 이에 반해 해학은 대상에 대한 긍정으로써 따뜻한 인간애를 가진 인간과 인정이
넘치는 사회에 대한 긍정이었습니다.
김삿갓의 삶의 형식은 바로 악덕하고 부조리한 인간과 사회에 대한 부정이면서 따뜻한 인간애를 가진 인간과 사회에 대한
긍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회비판
김삿갓의 방랑을 개인적 좌절의 표현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것은 김삿갓 혼자만의 좌절은 아니었을 겁니다. 시대적
배경에서도 알 수 있듯 봉건신분사회를 살았던 대다수의 피지배층과 몰락 양반들의 삶이 그러한 좌절의 삶이였습니다.
김삿갓은 민중의 생활과 일상을 기반으로 한 소재로 구체적인 민중의 삶을 노래하였고 그의 시는 양반은 물론 여염집
아낙이나 동네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향유되었습니다. 김삿갓의 이름이 문헌에서보다 입을 통해 전해질 수
있었던 것도 방랑생활 속에서 민중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가 지은 소제시(訴題詩 : 힘없고 못 배운 백성의 권리를 찾아주기 위해 그들의 대신하여 관가에 제출한 일종의
소송장)를 통해 그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묘쟁(墓爭 : 묘터를 빼앗은 양반사대부가를 비판), 독가소제(犢
價訴題 : 빈한한 농가의 송아지를 죽인 소송), 산소소장(山所訴狀 : 다른 사람의 선산에 조상의 묘를 무단으로 쓴 데 대한
소송) 등의 시가 이에 해당합니다.
김삿갓은 조상에 대한 부끄러움, 막힌 출세길 때문에 평생 한을 품고 살았으며 그 한은 시로써 표출되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이상과 현실의 대립은 자아인식의 대상이 되었고 나아가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으로 발현되었습니다. 즉 끝없는
방랑을 통한 자기 인식이 현실인식으로 발전되었으며 이것이 그의 시로써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가 방랑을 멈추지
않았던 것도 스스로의 존재인식을 이를 통하여 찾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김삿갓 시모음 가기

난고 문학관
난고 문학관 사진
난고 문학관에는 난고 김병연의 생애와 발자취를 쫓아 일생을 바친 정암 박영국 선생의 김삿갓 
	연구자료가 전시되어 있고 멀티미디어를 활용한 다양한 김삿갓 관련 자료를 상영하고 있습니다.
	김삿갓 선생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매년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와 
	그의 정신을 기리고 있습니다
	전화 033-375-7900 개관시간 9:00 - 18:00
	관람료 어른 2,000원·청소년·1,500원·어린이 1,000원

 

 

김삿갓 유적지.

 

 

명천

이삿갓.ㅋㅋ

 

 

 

  영월은 해학과 풍자의 시선(詩仙) 김삿갓의 넋이 잠든 고장이다.
김삿갓 ! 그의 본명은 병연(炳淵), 호는 난고(蘭皐)이며 백일장에서 조부를 욕되게 하는 글을 써서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고 출가하여 삿갓을 쓰고 평생을 방황한 방랑시인이다.
매년 10월 중순 김삿갓묘역이 있는 하동면 노루목 마을에서는 추모제 추모살풀이춤 추모퍼포먼스 백일장등이 다채롭게 벌어져 그의 생애와 시의 세계를 새롭게 조명한다.
난고 김병연 선생 추모시비와 시비(詩碑)거리가 조성되어 김삿갓 주거지와 묘소가 함께 명소가 되었다. 김삿갓이 생전에 ‘무릉계’라 칭했을만큼 빼어난 경치를 지닌 태백산맥에서 갈라져 유적지에 이르는 계류를 ‘김삿갓계곡’이라 부르고 있다. 

난고 김삿갓의 묘소

 

 

 

 

자영.

그렇고 그런세상 그런대로 살아가세.ㅋㅋ

 

불평불만에 일침을...

허언시

 

난고문학관은 갑자기 속이안좋은 나땜시 발길을 돌리고 ...

정담.

 

 

외씨버선길은 다음기회에.....

 

 

 

이건 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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