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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래요.

금강산 화암사/

by 무던 2014. 10. 12.

 

울산바위

 

 
 화암사(禾巖寺)
금강산 팔만구암자의 첫번째로 손꼽히는 고성군 토성면 신평리에 위치한 화암사(禾巖寺)는 전통사찰 제27호로 신라 혜공왕 5년(769) 진표율사(眞表律使)가 비구니 도량으로 창건하였다. 진표율사는 법상종의 개조(開祖)로서 법상종은 참회불교의 자리매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지금으로부터 359년 전인 인조 11년(1633) 택당 이식(李植, 1584~1647)선생이 간성군수로 있을 때 썼다는 간성지 화암사조에 의하면, 「천후산 미시파령(天吼山 彌時坡嶺=미시령) 밑에 화암(禾岩)이란 바위가 바른편에 있기 때문에 절 이름을 화암사라 했다. 이절은 산허리에 위치하고 있어 가까이는 영랑호, 멀리는 창해에 임해있고 양양, 간성의 모든 산과 평원심곡이 눈 아래 보이고 넓고 아름다운 경치는 절이 토해 놓은 것 같다. 절 뒤에는 반석과 폭포가 특수한 모양을 하고 있어 가히 볼만하다.

1622년(광해군 14)에 절이 불에 타버렸으며, 지금은 중건 중이나 완공되지 못했다.
옛날에는 크고 우아한 문루가 있었는데 망가졌다. 문루에서 바라보는 창해에서 해 뜨는 모습은 강호를 찾는데 있어 이곳보다 나은 곳이 없건만 옛사람들을 찾아와 놀아보지 못했으며 지방사람들은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고 또 관동지방에는 이름난 곳이 많아 과객들이 이곳까지 올 겨를이 없었으므로 절 이름이 지금까지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간성군 남쪽 70리되는 곳에 있는 산으로서 석굴이 많고 그곳으로부터 바람이 나온다 하여 천후산이라 부른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양양과 간성 사이에 큰 바람이 많은 것도 이 까닭이라 한다. 뛰어난 성인대가 있는데 돌모양이 불상과 흡사해서 성인대라 하였다. 그 옆에 또 큰 바위가 있는데 마치 곡식을 쌓아둔 둥근 곳집같이 보인다하여 세속에서 화암(禾岩)이라 부른다.

또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옛날 이곳에서 적과 싸울 때 짚으로 만든 거적으로 이 바위를 둘러싸서 마치 벼가리 같이 보이게 하여 적을 물리쳤다 하여 화암(禾岩)이라 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화암사는 창건 이래 고종 원년까지 1096년간 화재가 5번이나 났는데 이것은 화암이란 이름 때문이라는 것이다. 화는 불을 의미하는 것이니 화자를 쓰지 않도록 하고 화자 대신 수자로 쓰자는 것이다.

풍수음양오행설에 의하면 수극화(水克火)로 물은 불을 이긴다 하여 물 수(水)자를 써야겠는데 수(水)자를 쓰자 하니 절 이름에 대한 역사적 의의가 없어진다 해서 수(水)대신 수(穗)자를 쓰면 음(音)은 수(水)와 같고 뜻은 화(禾)와 같으니 수암(穗岩)이라 했으나 또 화재가 생겨 1912년에 화암(禾岩)으로 다시 고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항간에서는 이 바위를 ‘수바위(穗岩)’로 부르게 되었는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수(穗)자는 좀 어려운 한자여서 아는 사람이 적고 바위 경치가 아름답다 해서 수바위(秀岩)라고 세속에서 쓰기도 한다.

1911년 건봉사의 말사가 되었고, 1915년 소실, 6.25 전쟁으로 폐허, 1986년 중창되는 등 화재와 중건을 거듭하다 1991년 세계잼버리대회때 불교국가 천 여 명이 대웅전에서 수계를 받아 유명해졌다. 동쪽으로는 발연사가 있고, 서쪽에는 장안사, 남쪽에는 화암사가 있어 금강산에 불국토를 이루려는 진표율사의 뜻이 담겨 있는 사찰이다.

화암사는 오랜 세월 동안 흙속에 묻힌 옥돌처럼 빛을 보지 못하다가 근래에 이르러 동선 주지스님의 원력으로 많은 불사가 이루어져 새로 재건 단장되어 많은 불자들과 탐방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최북단 금강산 남쪽 첫 관문인 사찰로서, 2011년 4월 5일(음력 3월 3일 삼짇날)부터 온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위한 미륵대불과 해맞이 공원조성 불사 1000일 기도정진 중에 있다.

전국 불자들의 수희 동참과 함께 미륵부처님의 나투심으로 하루속히 통일이 이루어지고 이 나라가 미륵부처님의 무량한 가피와 복덕으로 불국 안락정토가 구현(具顯)되기를 간절히 발원하고 있다.

 

 

금강산 화암사

 

위치 :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신평리
창건년도 : 신라36대 혜공왕5년 진표율사가 창건(약1210여년전)

화암사는 금강산 최남단의 절로서 지금으로부터 약1216년전(서기769년) 신라 36대 혜공왕 5년에 진표율사가 설악산 북쪽기슭에 창건하고 화암사라 이름하였다.

 

화암사 기록에 따르면 이절은 다섯차례나 화재를 입었다고 전한다.

 


 

 

절 남쪽에 있는 수바위와 북쪽에 코끼리모양의 바위가 있는데 바위의 맥이 서로 상충하는 자리에 절터가 있어 수바위가 뿜어내는 열기를 이겨내지 못하여 여러차례 화재를 겪었다고 전한다.

이런 이유인지는 몰라도 지금의 절은 창건당시 위치에서 남쪽으로 100m쯤 떨어진 장소에 있다.

지금의 화암사는 고종원년에 또 화재로 소실되어 그해 9월에 수봉으로 이전하여 건립하고 수암사라 이름하였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70여년전 임자년 1912년에 화암사라 개칭하였다.


화암사 남쪽 300m지점에는 수바위라는 왕관모양의 우람한 바위가 있다.

 이 바위에서 화암사 창건자인 진표율사를 비롯한 이절의 역대스님들이 수도장으로 사용하여 왔다.

계란모양의 바탕위에 왕관모양의 또 다른 바위가 놓여 있는데 윗면에는 길이 1m, 둘레 5m의 웅덩이가 있다. 이 웅덩이에는 물이 항상 고여있어 가뭄을 당하면 웅덩이 물을 떠서 주위에 뿌리고 기우제를 올리면 비가 왔다고 전한다. 이 때문에 수바위 이름의 '수'자를 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바위의 생김이 뛰어나 빼어날 秀자로 보는 사람이 많다.

수바위의 전설을 보면 화암사는 민가와 멀리 떨어져 있어 스님들은 항상 시주를 구하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날 이 절 두스님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수바위에 조그만 구멍이 있으니 그 곳을 찾아 끼니 때마다 지팡이로 세번 흔들라고 말하였다. 잠에서 깬 스님들은 아침 일찍 수바위로 달려가 꿈을 생각하며 노인이 시킨대로 했더니 두 사람분의 쌀이 쏟아져 나왔다. 그 후 두 스님은 식량 걱정없이 편안히 불도에 열중하며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몇 년이 지난 어느날 객승 한사람이 찾아와 이절 스님들은 시주를 받지 않고도 수바위에서 나오는 쌀로 걱정없이 지냈다는 사실을 알고 객승은 세번 흔들어서 두 사람분의 쌀이 나온다면 여섯번 흔들면 네 사람분의 쌀이 나올 것이라는 엉뚱한 생각을 하고 다음날 날이 밝기를 기다려 아침 일찍 수바위로 달려가 지팡이를 넣고 여섯번을 흔들었다. 그러나 쌀이 나아야 할 구멍에서는 엉뚱하게도 피가 나오는 것이었다. 객승의 욕심에 산신의 노여움을 샀던 것이다. 그후부터는 수바위에서는 쌀이 나오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때아닌 진달래

신선대 가는길에서 내려다본  화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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