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대화상(布袋和尙)의 유래는
중국 양(梁)나라 때의 명주(明州) 봉화(奉化)에 자칭 포대화상이라고 하며 포대를 매고 주유하면서 보는대로 구걸하여 포대에 담았는데, 어느날 승(僧)이 앞에서 감으로 뒤따라 감에 승이 머리를 돌리자 화상이 말하기를 나에게 "한푼 주시오"하니 승이 말하기를 "도를 얻었으면 주겠다" 하더라. 이에 화상이 자루를 내려놓고 손을 맞잡고 서 있거늘 보복화상(保福和尙)이 묻기를 "무엇이 불법의 대의(大意)인가" 하니 師(사:포대화상)가 포대(布袋)를 버렸다. 이에 보복화상이 "벼를 이같이 취급하니 다시 향상사(向上寺)가 있겠는가" 하니 화상은 말없이 되지고 가버렸다한다.
그는 재생하여서도 포대를 지고 다녔다 한다. 화상이 양나라 정명(貞明) 3년(917)에 악림사(岳林寺) 반석(盤石)에 단좌(端坐)하여 게를 설하기를 "미륵 진미륵은 분신이 천백억(千百億)이라 때때로 시인(時人)에게 보이나 시인(時人)은 스스로 알지 못한다. "하고 입멸했다. 그래서 포대화상이 미륵을 낳았다고 전해온다. 이 의미는 걸인농부가 모든 억조창생을 구원하여 하느님의 일을 직접 행사하는데 그때의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하므로 재생신하여 다시 수원나그네로 나온다는 뜻이다.
포암사에 가면 제일 먼저 마주하는 불상이다.
돌탑
황금불상
마애불과 만리송
문경 하늘재 포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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