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말의 의병장 의암 류인석
의암 선생은 1842년(헌종 8) 남면 가정리에서 태어났으며,
화서 이항로의 문하에 들어가 배웠다.
1876년 강화도 조약을 체결할 때에는 홍재구 등 강원도, 경기도 유생을 이끌고 상소를 올려 개항 반대 운동을 전개하였다.
1895년 6월 제천에서 제자를 가르치고 있던 성재 유중교 선생을 계승하기 위해 그 곳으로 옮겨가 활동하다가 을미사변, 단발령을 계기로 그 해 음력 12월 의병 봉기를 단행하였다.
의암은 한 때 제천·충주·단양을 중심으로 중부 지역 일대를 장악하였으나, 마침내 관군(官軍)에게 패해 황해도·평안도로 이동하였다가 만주로 망명하였다.
이후 국내외를 오가며 항일 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08년에는 블라디보스톡으로 가서 이상설(李相卨)·이범윤(李範允) 등과 함께 항일 세력을 모아 십삼도의군(十三道義軍)을 결성하고 도총재(都總裁)로 추대되었다.
그 후에도 연해주, 만주 일대에서 항일 운동을 계속하다 병사하였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광복장이 수여되었다
류인석(柳麟錫,1842,1,27 ~ 1915,3,14),호 의암(毅庵),본관 고흥.
1842년1월27일에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1876년(고종 13)병자수호조약을 체결하려 하자,문하 유생을 이끌고
반대하는 상소를 했다.
1894년 갑오경장 이후 김홍집 친일내각이 조직되자 의병을 일으켜
친일파와 탐관오리 등을 죽이고 관군에게 쫓겨 단양으로 퇴거했다.
다시 만주 회인현으로 망명했다가 고종의 유지로 한때 귀국했으나
1898년(광무 2)다시 만주로 갔다.
1909년(융희 3)블라디보스토크에서 13도 의군도총재에 추대,이상설 등과
함께 두만강 연안으로 쳐들어오려고 기도했으나 러시아 관원에게
체포되었다.뒤에 석방되어 1910년 한일합방 후에도 독립운동을
계속하다가 1915년3월14일 순국했다.
저서에 <소의신편><화동속강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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