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 위치 | 유럽 아드리아해 동부해안 |
|---|---|
| 인구 | 4,164,783명 (2018 추계) |
| 수도 | 자그레브 |
| 면적 | 56,594.0㎢ |
| 공식명칭 | 크로아티아 공화국 (Republic of Croatia) |
| 기후 | 서안해양성기후, 온난습윤성기후, 지중해성기후 |
| 민족 구성 | 크로아티아인(90%), 세르비아인(5%) |
| 언어 | 크로아티아어 |
| 정부/의회형태 | 공화제 / 다당제&단원제 |
| 종교 | 로마가톨릭(88%), 세르비아정교(4%) |
| 화폐 | 쿠나 (kn) |
| 국화 | 아이리스 |
| 대륙 | 유럽 |
| 국가번호 | 385 |
| GDP | USD 61,056,000,000 |
| 인구밀도 | 74명/㎢ |
| 전압 | 220V / 50Hz |
| 도메인 | .hr |
요약 발칸 반도 중서부에 있는 국가. 옛 유고슬라비아 연방을 이루던 공화국이었으나, 1980년대말 개혁의 흐름 속에 1991년 6월 25일 독립을 선언했다. 수도는 자그레브, 화폐는 쿠나이다. 국민의 대부분이 크로아티아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공업의 급속한 발전으로 농업국가에서 공업국가로 변모했다.
북서쪽으로는 슬로베니아, 북쪽으로는 헝가리, 동쪽으로는 세르비아(보이보디나 자치구), 남쪽으로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국경을 이루며, 서쪽으로는 아드리아 해에 면해 있다.
수도는 자그레브이다. 옛 유고슬라비아 연방을 이루던 공화국이었으나, 1980년대말 소련과 동유럽을 휩쓴 개혁의 흐름 속에 1991년 6월 25일 독립을 선언했다.
자연환경
헝가리의 영토였던 크로아티아-슬라보니아와 제1차 세계대전 이전 오스트리아에 속해 있던 달마치야 및 이스트라 등의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으로 도나우·드라바·사바 강 사이에 있는 비옥한 평원에서 시작하여 서쪽으로는 베네치아 만까지, 남쪽으로는 아드리아 해를 따라 몬테네그로까지 펼쳐지면서 전체적으로 초승달 모양을 이루고 있다. 크로아티아는 지형학적으로 대략 3개 부분으로 나뉜다. 첫번째 남서부 지역은 이스트라와 달마치야로 이루어진 크로아티아 해안으로 암석투성이인 카르스트 지형의 산맥이 아드리아 해로 맞바로 이어져 연안은 울퉁불퉁하고 앞바다에는 1,000개 이상의 섬들이 분포해 있다. 2번째는 중앙산악지대로 알려진 북서부 지역으로 디나르알프스 산맥의 일부를 이룬다.
마지막으로 평평한 북동부 지역은 자그레브 주위의 완만한 구릉지와 동쪽의 판노니아 평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지역 전체가 비옥하기 때문에 농업에 적당하다.
크로아티아는 2종류의 기후대를 가지는데, 달마치야와 이스트라는 비교적 따뜻한 지중해성 기후가 나타나고 내륙 안쪽에는 보다 심한 대륙성 기후가 나타난다. 주요 강으로는 자그레브를 가로질러 흐르다 하류에 이르러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경계를 이루는 사바 강, 헝가리와 경계를 이루는 드라바 강, 세르비아의 보이보디나 주와 경계를 이루는 도나우 강 등이 있다.
리예카(피우메)가 제1의 항구이며, 그밖의 주요항으로는 자다르·시베니크·스플리트·두브로브니크가 있다.
국민
주로 크로아티아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공용어는 라틴어 알파벳으로 표기하는 세르보크로아티아어이다.
소수민족으로는 세르비아인이 비교적 큰 집단을 이루고 있으며, 그밖에 소수의 슬라브계 회교도, 헝가리인, 슬로베니아인, 이탈리아인 등이 있다. 종교는 크로아티아인들 사이에서는 로마 가톨릭교가 지배적이지만 세르비아인들은 세르비아 정교회를 믿는다.
경제
크로아티아의 경제는 농업과 가축사육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슬라보니아의 판노니아 평원에서 재배되는 곡물류를 비롯하여 콩·감자·사탕무·아마·대마·과일 등이 주요작물이었으며, 연안의 섬들에서는 포도재배가 활발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후 공업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기존의 목재산업이 중요성을 유지하는 한편 경공업이 발달하고 매장량이 많은 유전들이 발견되면서 크로아티아는 전통적인 농업국가에서 공업국으로 변해갔다. 이스트라와 달마치야의 주민들은 전통적으로 포도나 올리브를 재배하거나 어업 및 항해업에 종사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이 지역에서도 해운업과 관광업(특히 달마치야에서)이 발달했으며, 천연자원(석유·석탄·보크사이트)을 기반으로 한 공업개발에 많은 관심이 주어졌다. 주요 산업으로 식품가공·포도주·섬유·화학·석유·천연 가스 산업 등이 있다. 체티나·크르카 강에 주요 수력발전소가 있다.
정치·사회
1990년에 제정된 헌법에 따라 양원제 의회(사보르)를 채택하고 있으며 의회에서 총리를 선출한다.
세르비아계 소수파는 사보르 내에서 의석이 보장되며, 대통령은 국민투표를 통해 선출된다.
고등교육기관으로 수도인 자그레브에 자그레브대학교(1669 설립)가 있으며, 자다르·스플리트·오시예크·리예카 등에 그 분교가 있다. 교육 수준 및 문자해득률은 높은 편이다.
역사
크로아티아인들이 이 지역에 들어온 것은 7세기였다.
북부 달마치야에서 판노니아까지 진출했던 크로아티아의 부족들은 느슨한 동맹을 이루고 있다가 803년에 샤를마뉴의 종주권을 인정했으며, 곧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다. 그후 크로아티아인들의 로마 가톨릭교에 대한 충성심은 정교회를 믿는 이웃 세르비아와의 관계에 계속 영향을 끼쳐왔다. 10세기에 크로아티아 왕국이 수립되었고 1091년에 헝가리의 라슬로 1세가 왕국의 통치권을 장악하면서 크로아티아는 8세기 동안 헝가리에 합병되어 있었다.
헝가리와의 합병 기간 동안에도 크로아티아는 자체의 의회인 사보르를 유지했으며, 법률상으로는 독립 왕국의 지위를 인정받았다. 1526년 헝가리가 모하치 전투에서 오스만 제국에 패배하면서 크로아티아의 대부분 지역이 투르크로 넘어가 1699년까지 그들의 통치를 받았다.
나머지 지역은 뚜렷한 통치자 없이 남겨져 있다가 1527년 사보르 의회에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페르디난트를 왕으로 선출했다. 오스트리아는 크로아티아와 슬라보니아 지역들을 군사적인 국경지대로 삼았으며, 터키와의 전쟁 때 국경 주민으로 징발돼간 세르비아인들을 식민지화했다. 1809∼13년에 일리리아 지방의 일부로서 나폴레옹의 통치를 받았다.
1867년 이중제국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워진 후, 달마치야와 이스트라는 비엔나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크로아티아-슬라보니아는 1849년에 오스트리아의 한 주가 되었다가 1868년에는 헝가리의 자치주이자 이름뿐인 크로아티아-슬라보니아 왕국으로 전환되었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패배한 후 크로아티아는 다른 남슬라브족 영토와 함께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1929년에 유고슬라비아로 개칭)을 이루었다.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 군주들 간의 관계는 결코 원만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중 유고슬라비아가 추축국들에게 점령·분할당하자 1941년 4월 10일 자그레브에서 크로아티아가 독립국가임을 선포했고, 4일 후에 독일과 이탈리아의 승인을 받았다.
이 신생국은 크로아티아-슬라보니아, 달마치야의 일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포함하고 있었다. 새 국가는 파시스트 테러 조직인 우스타샤의 우두머리 안테 파벨리치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그는 극도로 잔인하고 폭력적인 독재정치를 펼쳤다.
파벨리치는 소위 '인종정화'를 내세워 수십 만의 세르비아인, 유대인, 집시, 반파시스트 크로아티아인들을 학살했다. 제2차 세계대전중 공산세력이 이끄는 파르티잔(유격대원)들이 통치권을 확보한 지역에 지역위원회를 조직했고 그밖의 지역에서는 민족해방평의회를 결성했다. 1945년 파르티잔들이 자그레브를 점령한 후 이 평의회는 인민정부로 전환되었고, 크로아티아는 인민공화국으로서 유고슬라비아에 합병되었다.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크로아티아는 처음에는 유례없는 발전을 이룩했지만 연방 내에서 자치권을 더 많이 확보하려는 노력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사회주의가 붕괴하자 선거를 통해 비공산주의계 정부가 탄생했으며 1991년 6월 25일 독립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에 자극을 받은 크로아티아 내의 세르비아인들은 반란을 일으켰으며, 세르비아가 이끄는 유고슬라비아군의 도움으로 크로아티아 내의 여러 지역을 점령했다.
한국과의 관계
1992년 4월 15일 한국이 크로아티아를 승인한 뒤, 1992년 11월 18일에 정식으로 외교관계를 맺었다.
북한과는 1992년 5월 12일 승인이 이루어지고 1992년 11월 30일에 수교를 했다. 공관장은 주헝가리 대사가 겸하고 있으며, 진출업체로 현대종합상사·삼성물산 등이 있다. 한국은 승용차·텔레비전·오디오 등을 수출하며, 크로아티아는 종이·직물·의약품 등을 수출한다. 대한 수입액은 3,127만 달러이고 대한 수출액은 160만 달러이다. 1997년 현재 체류자는 15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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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레브 대성당
자그레브 대성당
다른 표기 언어 Katedrala 동의어 자그레브를 대표하는 대성당
| 위치 | 반옐라치치 광장에서 도보 5분 |
|---|---|
| 소재지 | Katedrala Marijina uznesenja, 10000, Zagreb |
| 좌표 | 위도: 45.8145885(45° 48′ 52.52″ N) / 경도: 15.9792076(15° 58′ 45.15″ E) |
| 이용 시간 | 월~토: 10:00~17:00 / 일: 13:00~17:00 |
자그레브 대성당은 1093년 처음 건설되기 시작했는데, 1242년 타타르족의 침입 때 방화로 인해 완전히 파괴되었다.
이후 재건축되었지만, 1880년 지진으로 인해 성당은 심각한 손상을 입었고, 1889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된 것이다.
현재도 성당 외부 일부가 공사 중이다.
성당은 전반적으로 바로크 양식으로 건축되었으며, 높이 솟아 있는 108m의 쌍둥이 첨탑은 후반 네오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다.
처음엔 똑같이 만들어졌던 것이 손상되면서 그 높이가 달라졌다고 한다.
내부는 5000명이 동시에 예배를 드릴 수 있을 정도로 큰 규모인데,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제단들이 있고, 보물급 유물들도 10개 이상이 이곳에 있다.
또한 13세기에 그려진 프레스코화와 벽에 새겨진 상형 문자도 눈여겨봐야 한다.
성당 앞 광장에는 성모상과 수호성인의 화려한 조각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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