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마을 지킴이로서 신이 깃들어 있다고 여겨 모셔지는 신격화된 나무.
내용
당산(堂山)은 한 고을, 한 마을의 지킴이신을 모신 성역이다. 당산은 마을의 수호신을 모신 신단(神壇) 또는 신당이 위치한 산, 강원도 화천군 강동면에서는 마을 수호신을 모신 곳을 ‘산제당’이라고 일컫는다. 화천의 산제당은 다른 지역 같으면 당연히 당산 또는 서낭당, 도당이라고 불리는 마을의 성역이다. 당산은 어느 특정 지점이 아니다. 고을의 수호신인 고을지킴이를 모신 단(檀)이나 작은 건조물을 가리킬 때는 서낭당, 산신당, 도당 등으로 바꾸어 지칭하기도 한다.
당산은 한 마을 안의 비교적 야트막한 언덕 또는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게 마련이다. 더러는 낮고 작은 봉우리에 위치하기도 한다. 당산은 숲 안에 있어서 우묵하고 안존하다. 다소곳한 성역이라는 느낌을 풍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신령이 깃든 곳이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당산의 핵심이 바로 당산나무이다. 우거진 고목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나무 둘레에 금색이 처져 있거나, 밑동에 왼새끼 또는 백지가 감겨 있는 경우가 많아서 쉽게 다른 나무들과 구별이 된다. 밑동에 바싹 붙어서 작은 당집이 있거나 신줏돌이 자리하고 있는 형태로 보기에는 흔한 편이다. 그러나 꼭 이처럼 당집이나 신줏돌, 곧 신으로 섬겨진 돌이나 바위와 짝지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독자적으로 나무만이 신목(神木)으로 있는 경우도 있다.
당산나무는 신격화된 나무이다. 신목이자 신주 나무이다. 고을지킴이 신이 깃들여 있는 것으로 모셔지기도 하지만 마을 또는 고을의 지킴이 그 자체로 승화되어 있기도 하다. 접신목(接神木)이기도 하지만 그 스스로 신주로 승격되어 있기도 한다. 나무가 곧 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당산나무는 성수(聖樹)가 된다. 당산나무 또는 서낭나무는 당산, 도당 또는 서낭당의 중핵이다. 당산의 당집 또는 서낭당의 당집과 어울려 있는가 하면 그 자체로 당산 또는 서낭당이 되기도 한다.
이들 나무에 당산신이나 서낭신이 직접 내리거나 거기 접신(接神)해 있기 때문에 나무가 신체(神體)로 섬겨지기도 하는 것이다. 마을의 지킴이 신을 통틀어서 골매기, 곧 고을막이의 신으로 칠 때 당산나무나 서낭나무는 바로 골매기가 되기도 한다. 이런 때 마을의 민속신앙으로는 나무고사가 베풀어진다. 즉 나무 자체가 따로 굿이나 고사를 받게 되는 것이 나무고사이다.
그러나 당산나무는 그 자체가 신앙의 대상으로 신격화되는 것뿐만이 아니다. 당산의 중심이자 마을의 중심축으로 승화되기도 한다. 이 점에서 당산나무가 지니는 지역공동체와의 연관성을 찾게도 된다. 이런 경우 한 마을 또는 공동체의 정자나무가 되고 신목이 된다. 정자나무는 한 지역의 공동체가 그 공동체다움을 향유하게 되는 구심체가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당산나무의 성격은 당산 자체가 마을이며 이는 고을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음과 겹쳐지게 된다. 모든 사례에서 당산은 마을의 중앙에 위치하는 것은 아니다. 지리적으로는 가장자리나 어느 한쪽에 치우쳐 있다고 해도 심리적으로는 마을의 중앙 또는 중심에 덩그렇게 자리 잡고 있다.
이에 따라 당산 자체는 세계의 중심된 또는 우주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음으로써 마을의 세계산 또는 우주산이라고 간주된다. 이것은 단군신화에서 태백산이나 가락국의 신화에서 구지봉(龜旨峰)이 지니게 되는 면모이며, 성격과 맞통하게 된다. 각 마을의 당산은 작은 태백산이고 작은 구지봉인 셈이다. 당산은 그 자체가 하늘세계와 지상세계를 잇는 매체가 되기도 한다. 하늘에서 오는 신의 내림을 직접 받아서 고사를 지내고 굿을 치는 제단이 되기도 한다. 이 점은 가락국의 김수로왕 신화가 구체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단군신화에서는 우주산에 또 당산나무가 솟아 있다. 신화에서는 직접적으로 신단수( 『삼국유사』에서는 神壇樹, 『제왕운기(帝王韻紀)』에서는 神檀樹)라고 일컫고 있다. 신내림의 박달나무로 간주될 수 있지만 신수(神樹)인 박달나무가 단국(檀國)이라는 나라 이름의 기틀이 되고 단군(檀君)이라는 군주 칭호의 기틀이 되어 있다.
『삼국유사』와 『제왕웅기』 사이에서 신단(神壇)과 신단(神檀)으로 달리 표기되어 있는 것은 그 의미가 매우 깊다. 어느 한 쪽이 잘못 표기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신을 모시는 단이 신목과 짝지어져 있는 후세의 마을신앙의 보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신목이 다름 아닌 박달나무[檀]라면 한 성역을 두고 신단(神壇) 또는 신단(神檀)으로 인식될 것이고 이에 따라 두 낱말이 병기(倂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신단수는 한 나라 정치체제의 중추였고 종교이자 신앙의 중추였다. 속(俗)과 성(聖)의 양면에 걸쳐서 중심이었다. 고조선의 당산나무인 신단수의 비중은 정치에서나 신앙에서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당산나무는 나라의 모든 것이었던 셈이다.
신단수라는 당산나무는 우주산의 소슬한 봉우리에 솟아 있는 세계의 축(軸)이자 기둥이다. 하늘을 떠받들고는 하늘과 땅을 이어 주는 우주나무이자 세계나무이다. 그리하여 천신을 지상에서 맞아서 고사를 지내고 굿을 올리는 제단의 한가운데, 높다란 곳에 우람하게 솟아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단군의 부신(父神)인 환웅은 하늘에서 신단수 아래로 강림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가 신단수를 타고 하늘에서 강림한 것이라는 가능성이 있음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우주나무 또는 우주축을 타고 하늘과 땅 사이를 내왕한 인물이 된다.
수직으로는 천상세계와 지상세계를 이어 주는 축이나 기둥이 곧 당산나무이다. 수평으로는 전후와 좌우 네 방위의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는 기둥이면서 축이 된다. 당산나무가 우주나무 또는 우주축이라고 일컬어질 수 있는 근거를 여기에서 찾게 되며, 모든 당산나무는 이 신단수의 후손이 되는 셈이다. 신단수는 우주나무 또는 세계축으로서 당산나무의 원형이 된다. 마을의 당산나무는 곧 그 마을의 신단수가 된다.
‘큰 나무를 세우고 방울과 북을 걸어서 귀신을 섬겼다’ ( 『삼국지』 위지 동이전)고 전해지는 소도(蘇塗)의 나무 역시 당산나무의 또 다른 보기이다. 생나무나 나무기둥이나 우주축으로서는 다를 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산나무가 솟아 있고 우거져 있는 한 거기에는 고조선의 신단수의 잔영(殘影)이 스며져 있게 마련이다. 그 아래에서 도당굿,당산굿, 서낭굿 등의 이름으로 마을굿 또는 골매기굿이 치러지고 베풀어질 때, 거기에는 언제나 필연적으로 단군신화가 펼쳐지게 마련이다.
우주나무 또는 세계나무는 분포가 매우 넓다. 그 성스러운 나무는 지구 북반구의 동서에 걸쳐서 분포되어 있다. 서로는 북유럽의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시작해 중부 시베리아를 거쳐서 동북아시아의 시베리아에 이르기까지 가히 범세계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우주나무 또는 세계나무가 분포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북유럽 신화의 최고 신인 오딘(Odin)이 타고 하늘과 땅 사이를 내왕했다는 ‘이그드라실(Yggdrasil)’에서 시작해 시베리아 예벤키(Evenki)족의 ‘투루(Turu)’, 동북아세아의 만주족의 ‘투룬-모(Turun-mo)’, 일본의 ‘히모로기(Himorogi)’에 이르기까지 지구의 북반구에서 범세계적인 분포를 보이고 있는 세계나무 또는 우주나무와 더불어 우리의 신단수이자 당산나무는 우거져 있다. 세계의 중심에 솟은 중추까지 지상에서 하늘을 떠받드는 축, 천상세계와 지상세계를 이어 주는 기둥으로서 우리의 당산나무는 경건하고, 거룩하게 우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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