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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래요.

[스크랩] 횡성 봉복사

by 무던 2013. 2. 28.

 

횡성청일 봉복사로 나들이 다녀왔다.

아들 고2때 모임 엄마들과

우리마을 송어횟집에서 회를 먹고.....

 

마당에 이렇게 이쁜 단풍으로

가을을 다 맞이하고 보낼수 있을것같은 모습의 단풍나무.

 

늘 만남이 설레는 모임/

 

이모임의 좋은점은

누구하나도

 5년간 만났으면서도 넘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

 

 

 

 

 

           봉복사(鳳腹寺) 부도(浮屠) - 1
           당초 봉복사에 있던 6기의 부도 외에 1988년 조성된 것으로 사승(寺僧) 서운(瑞雲)이 입
           적한 후 수습한 14과(顆)의 사리(舍利)를 봉안하였다고 한다.
           방형(方形)의 기단(基壇) 위에 연화문(蓮花文) 받침을 두고 상단과 하단의 폭을 줄인 원
           통형 탑신(塔身) 위에 8각의 옥개석을 얹은 간략한 모습이다. 총높이는 143㎝이다.

           봉복사(鳳腹寺) 부도(浮屠) - 2
           원당형(圓堂形) 부도(浮屠)로 선곡당(瑞谷堂) 찬연(粲淵, 1702~1768)의 부도이다. 서곡
           당은 조선 영조 23년(1747)에  봉복사를 중건한 스님으로  봉복사와 수타사(水墮寺)에서
           주석(住錫)하였으며  수타사에서 입적하였는데, 사리 2과(顆)가  나와서 봉복사와  수타
           사에 하나씩 안치하였다. 현재 수타사에도 찬연 스님의 부도와 탑비가 남아 있다.  부도
           는 하대석을 결실한 듯 지대석  위에 바로 6각의  중대석을  놓았는데 중대석  하단에는
          ‘서곡당탑(瑞谷堂塔)’이라는 명문(銘文)이 남아 있다.  상대석 역시 6각으로 측면과 윗
           면에는 연화문을 배치하고 그 위에 구형(球形)의  탑신(塔身)을 올렸다.  옥개석은 상륜
           부와  1석으로 만들었는데 6각이며 둔후하고 탑신보다 커서 균형감을 잃고 있다.  총 높
           이는 161㎝이다.

 
조선후기의 봉복사 부도군

봉복사(鳳腹寺) 부도(浮屠) - 3 종형(鐘形) 탑신(塔身)에 작은 보주형(寶珠形) 상륜(相輪)을 1석으로 만든 석종형(石鐘 形) 부도로서 탑신 전면의 중앙에 ‘원명당탑(圓明堂塔)’이란 명문이 남아 있다. 높이 는 106㎝이다. 봉복사(鳳腹寺) 부도(浮屠) - 4 8각의 지대석 위에 종형 탑신을 올린 석종형(石鐘形) 부도(浮屠)로 탑명(塔銘)이 없다. 탑신은 원형이나 중심부를 4각으로 평평하게 만들었으며, 상륜은 뾰족하게 만들었다. 총 높이는 145㎝이다. 봉복사(鳳腹寺) 부도(浮屠) - 5 석종형 부도로서 탑신 전면의 중앙에 ‘서암당탑(西岩堂塔)’이란 명문이 있다. 총 높이 는 130㎝이다. 봉복사(鳳腹寺) 부도(浮屠) - 6 자연석 기단의 윗면에 원형의 탑신받침을 두고 그 위에 종형 탑신을 올린 석종형 부도이 다. 둥근 상륜은 작고 낮게 만들었다. 탑명(塔銘)은 없다. 총 높이는 130㎝이다.
           봉복사(鳳腹寺) 부도(浮屠) - 7
           원당형 부도로 지대석 위에 6각의 하대석을 1석으로 만들었는데, 하대석의 윗면에는  각
           변 3판(瓣)씩 총 18판의 복련(覆蓮)을 조각했다. 중대석과 상대석은 6각으로 중대석에는 
           아무런 조식(彫飾)이 없다. 상대석의 측면에는 앙련(仰蓮)을 두었는데, 연판(蓮瓣)의 배
           치는 중앙에 1판의 연판을 두고 모서리에도 1판씩 배치하여 총 12판(瓣)을 두었다. 탑신
           은 크고 구형(球形)이며 위에는 상륜부와 1석으로 된 옥개석을 갖추고 있는데, 옥개석의 
           크기가 알맞아 이 부도군에서는 균형감이 가장 뛰어난 부도이다. 총 높이는 170㎝이다.
           비석(碑石)
           현재 하단부가 묻혀 있어 정확한 크기를 알 수 없다. 명문은 심하게  마멸되어 판독하기 
           어렵다. 현재 높이는 55㎝, 폭은 36㎝, 두께는 15㎝이다.

 

 

 청일면 신대리  산138번지에  있는 봉복사는 덕고산(현재 태기산) 서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데, 횡성군에 있는 현존 사찰  중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되고 규모 또한 큰 사찰이다.
           봉복사의  창건연대는 이 사찰에 소장되어 있는 사지(寺誌) 에 따르면, 647년(신라 선덕
           여왕 16년)에 자장율사(慈藏律師) 가 덕고산 신대리에 창건하고 삼상(三像) 을 조성하여
           봉안한 뒤에 오층석탑을 조성하고 봉복사(鳳腹寺) 라 하였다. 

 652년(진덕여왕 6년)  에
           낙수대(落水臺, 천진암(天眞庵)  등의 암자를 지었고, 669년(문무왕 9년) 소실되어 동왕
           (同王) 11년과 12년에  원효조사(元曉祖師) 가 중건(重建) 하였다고 한다. 1034년 (고려
           덕종 3년) 에는 도솔암(兜率庵,낙수암(落水庵) 이 소실되었다.  1747년(조선 영조 23년)
           에는 서곡선사(瑞谷禪師) 가  중건하였으나 1907년(대한제국 융희 원년) 에 소실되었다
           고 한다.
          

            봉복사(鳳腹寺) 의 사찰명에 대해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과 범우고 (梵宇
           攷) 에는 ‘奉福寺在德高山’으로, 횡성읍지(橫城邑誌) 와 여지도서(輿地圖書) 에는‘奉
           福寺在縣北七十里五房’으로, 관동지(關東誌) 와 관동읍지(關東邑誌) 에서는 ‘鳳腹寺在
           縣北七十里五房今爲單房’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처음에는 ‘봉복사(奉福寺)로
           불려지다가‘봉복사(鳳腹寺)'로 변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찰 주변에는 맷돌 등  석조
           물과 기와 조각이 흩어져 있다. 와편은 수지문(樹枝文) 과 기하학적 문양의 평와편(平瓦
           片)으로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의 것들이 대부분이다.

 

 

풍경

 

대웅전 문살

 

송어회먹고

 봉복사 전나무숲길을 산책하고

 드라이브하고....

 

가을,

제대로 느끼고

또 많은 충천을 시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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