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15대 광해군(재위 1608∼1623)과 왕비 문성군 부인 유씨의 무덤이다. 광해군은 임진왜란 이후 재위 15년 동안 실리외교, 서적편찬, 대동법, 국방력 강화 등으로 나라 안정에 힘을 쏟았다. 그러나 동생인 영창대군 등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유폐시키는 등 패륜적인 행위로 인조반정 이후 제주도로 유배되었다가 그 곳에서 생을 마쳤다. 사후 2년 뒤 이곳으로 옮겨졌다.
무덤 주변에는 비석과 상석, 문석인 1쌍 등의 여러 석물들이 있으나, 다른 왕릉에 비해 초라하다.
“어머니 무덤 발치에 묻어 달라”
선조의 후궁 공빈 김씨는 광해군을 낳은 지 2년 만에 산후병으로 죽었다. 광해군은 어렸을 적 인빈 김씨를 어머니처럼 따랐다.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는 인빈 김씨의 손자이다. 광해군은 인조반정 이후 강화와 제주도 귀양살이에서 수모를 당하며 재위기간(15년)보다 긴 19년을 살다가 인조 19년(1643년)에 생을 마감하였다. 제주도에 묻혔다가 이곳에 다시 이장되었다. 광해군은 유언으로 “내가 죽거든 어머니의 발치에 묻어 달라”고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조선 15대 광해군(재위 1608∼1623)과 문성군 부인 유씨의 무덤이다. 봉분이 두개인 쌍분이며, 무덤 주변에는 석물들이 있다. 광해군은 선조의 후궁 공빈 김씨의 아들로 형인 임해군 대신 1608년 왕위에 올랐다. 즉위 후 형인 임해군과 동생인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경희궁에 가두는 도덕적이지 못한 행동을 하였다.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가 왕이 되는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광해군은 강화와 제주도에 유배되었고, 인조 19년(1641)에 사망했다. 처음엔 제주도에 묻혔다가 인조 21년(1643) 이곳으로 옮겨졌다. 광해군은 재위 15년 동안 임진왜란 이후 나라를 안정시키기 위해 서적 편찬과 대동법 실시, 국방력 강화 등에 힘을 기울이기도 했다. 부인유씨는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가 되었고, 인조반정으로 폐위되어 강화로 함께 유배를 갔다가 1623년 사망했다. 양주에 무덤을 모시고, 광해군이 죽은 후 같은 곳으로 옮겨졌다.
공식명칭 |
남양주 광해군묘 |
주소 | 경기 남양주시 진건면 송릉리 산59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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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목 | 사적 363 | 전화번호 | 031-590-4721 |
지정일 | 1991.10.25 | 휴무일 | - |
한자명칭 | 南楊州 光海君墓 | 이용요금 | - |
테마 | 유적건조물, 무덤, 왕실무덤, 조선시대 | 주차여부 | - |
시대 | 조선시대 |
딱따구리 구경하는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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