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 여행 마지막날.
2014년 6월6일
아침 등산후 10시에 호텔에서 나와 이즈하라 시내쪽으로 도보관광.
고려문
-아리랑마츠리(축제)
조선에서 일본으로 향하던 조선통신사 행렬은 항상 대마도를 중간 기착지로 들러 휴식을 취하며 우리 문화를 전파했다.
해마다 8월 첫째주 토일요일에 열리는 아리랑마츠리에서는 당시의 통신사 행렬을 재현해 이즈하라의 고려문에서부터 시가행진을 벌인다.
주민 대부분이 축제에 참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부채를 펴들어 한국풍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이 때는 시내 숙박시설이 동날만큼 우리나라와 일본 관광객이 몰려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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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비
쓰시마번(對馬藩)은 임진왜란 이후 조선과의 국교회복을 위해서 전력을 다하였고 그 결과 1607년부터 1811년까지 약 200년간 12회에 걸쳐서 통신사 사절이 일본을 방문하였다.
조선통신사 일행은 300~500명 정도의 인원이었으며, 일본인들에게 선진 문화를 전파하였으며, 처음에는 막부 장군의 장군직 계승등을 축하하기 위한 사절단의 임무에서 차츰 국서교환 등의 임무로 변화하였다.
통신사의 방문으로 이루어진 활발한 교류와 우호관계를 21세기 한일우호의 지향점으로 삼고자 1992년 조선통신사비를 세웠다고 한다.
이즈하라 시내 관광지도
대마 역사민속 자료관
1978년 12월에 개관한 대마 역사민속 자료관은 도내의 문화재, 고고 역사자료, 민속자료, 소(宗)家 문고 등 귀중품을 전시하고 있다.
자료관 뜰에는 조선시대 열두 차례 일본을 방문한 조선통신사를 기념하는 '조선통신사지비(朝鮮通信使之碑)’가 세워져 있고,
그 앞에는 통신사 행력을 맞이하기 위해 세웠던 솟을대문이 서 있다.
자료관에는 고려판 대장경과, 대반야경, 훈몽자회등 한반도와의 교류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덕혜옹주 결혼봉축 기념비
이 비는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하는 뜻으로 건립되어 2001년 11월 10일 대마도에 거주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다시 복원되었다
고종의 막내딸 덕혜옹주가 1931년 당시 대마도 도주의 아들과 맺은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현지인들이 이즈하라의 작은 공원에 세웠다.
일제에 의해 강제로 결혼한 덕혜옹주는 결국 원만한 부부생활에 실패 1955년 이혼하고 만다.
덕혜옹주비 대마도의 역사를 탐방하면서 반드시 들러야할 곳중 하나인 덕혜옹주비는 한일관계의 역사를 되짚어 볼 수 있는 의미있는 장소이다.
덕혜옹주(德惠翁主, 1912년 5월 25일 ~ 1989년 4월 21일)는 조선의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 고종과 귀인 양씨의 황녀이다. 덕혜라는 호를 하사받기 전까지 ‘복녕당 아기씨’로 불렸고, 1962년에 ‘이덕혜’로 대한민국의 국적을 취득하였다.[1]
일제강점기 조선 경성부 덕수궁에서 태어나 경성일출심상소학교에 재학 중에 일본의 요구에 따라 유학을 명분으로 도쿄로 보내져 여자학습원에서 수학하였다. 1931년에 옛 쓰시마 번주 가문의 당주이자 백작 소 다케유키와 정략 결혼을 하여 1932년에 딸 소 마사에를 낳았다. 1930년에 정신분열증 증세를 처음 보였으며 결혼 이후 병세가 악화되었다. 1946년부터 마쓰자와 도립 정신병원에 입원하였고, 1955년에 이혼하였다. 1962년에 대한민국으로 귀국하여 창덕궁 낙선재 내의 수강재에서 거주하다가 1989년에 사망하였다.[2] 유해는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의 홍유릉 부속림에 안장되었다
시내 곳곳에 있는 신사들...
☞마리아신사(팔번궁신사)☜
이즈하라의 신을모신 신사
대마도의 대표적인 신사 팔번궁(하치만구).
이 신사는 삼한을 정벌한 신공황후를 모신 신사이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그녀는 임신한 몸으로 출병하여 정벌에 나섰으며, 삼한의 항복을 받아냈다고 한다.
하치만구(八幡宮) 신사...
일본에서 宮이 붙어 있는곳은 격조높은 신사라고 한다.
이곳에는 하치만구 신사, 우노도 신사, 천신 신사, 와카미야(마리아) 신사가 있다.
☞☞나카라이 기념관☜
5천엔 권 지폐에 그려진 유명한 여류 소설가 히구치 이치요(?口一葉, 1872~96)의 스승이자 그녀가 흠모하였던 나카라이 도스이(半井桃水, 1860~1926)의 기념관이다.
춘향전을 번역하여 일본에 소개한 문학가
이즈하라의 수선사
서기656년 백제 귀족출신 비구니가 창건한절로
비구절로성격이 바뀌면서 수선사로 개칭되였고
의병출신 최익현선생의 유해가 잠시안치되였던 곳이다
<지장보살... 중생을 모두 구제할때까지 극락에 가지 않겠다는 마지막 지킴이.....
일본에서는 지장보살이 어려서 죽거나 낙태등으로 사라진 어린 영혼들을 돌본다고도 하며 사진처럼 턱가리개를 해준다
최익현선생 순국비
구한말 대유학자이며 구국항일투쟁의 상징인 면암(勉庵) 최익현 선생은 유림의 명사로 문도가 수천명에 이르렀다.
1905년 광무9년에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를 반대하여 다음해 6월 제자 임병찬과 전라도 순창에서 의병을 일으켜 항전중 체포되어 대마도 이즈하라 위술령에 유배되어 순국하였다.
70세가 넘는 고령에도 용감하게 싸우다 체포된 최익현 선생은 유배지에서도 그 고고한 뜻을 굽히지 않으며 지급되는 음식을 전혀 먹지 않다가 아사하였다.
장례는 백제의 비구니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슈젠지(修善寺)에서 치뤄졌으며 유해는 부산으로 이송되었다. 선생의 넋을 기리고자 1986년 한일 양국의 유지들이 힘을모아 슈젠지에 순국비를 세웠다.
대마도 시내 상가에 저런문구들이 곳곳에...
일본의 유명한 카스마키<카스테라빵집.>
별맛은 모르겠고 단맛만.
이즈하라시내 면세점
시내관광후 배타는 시간이 많이 남아 또 시내구경을.
면세점에서는 건강식품두개하고 마유를 사고.
티아라 쇼핑센터에서 커피한잔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일행과 만나는 장소로 이동.
택시타는곳도 한곳으로 정해져있다.
일본사람들은 자연을 사랑하는듯.
정원이 잘 가꿔져있고 꽃들도 많고 집들은 단순하게 지어진듯.
바다근처라서 그런가 옆에있는 수로에는 복어와 숭어.조개등등이 무리지어 있었다.
비둘기 집이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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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거리도 인상적이고 대형차가 없는것도 인상적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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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해서 대마도 여행 2박3일이 끝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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