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2,16일
산수유
지리산 남쪽 끝자락인 구례 오미리에는 금환락지(金環落地, 금가락지가 떨어진 명당)에 자리 잡은 대표적인 우리의 전통 누정인 운조루(雲鳥樓)가 있다. 운조루는 구름 속의 새처럼 숨어사는 집이라는 뜻으로, 오미동 유씨 집안 사랑채 누마루의 당호다. 운조루는 그 앞에 펼쳐진 너른 들판의 영화로운 시절과 슬픈 이야기를 한몸에 담고 있으며, 호남지방의 대표적인 양반가옥이다. 이 집은 삼수공(三水公) 유이주(柳邇冑)가 지었다고 전해지며, 유이주는 낙안군수와 삼수부사를 지낸 무관이다.
창건 당시의 이 집터에 대해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 집터를 길지라고 했으나 바위가 험하고 주변이 척박해서 그 누구도 집터로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이 집을 지은 유이주가 알아보고 이 땅에 집을 짓게 되었으니 지신은 이것을 고맙게 여기어 수백 명의 장정을 동원하여 터를 닦았다.’고 전하고 있다. 유이주는 본래 대구 사람으로 이 금환락지의 명당에 매료되어 은퇴하면 이곳에 세거를 이룰 것을 작정하고 그때부터 운조루 건축 사업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짓기 위해 7년이라는 세월이 소요 되었다고 한다. 집안의 후손들에 의하면 이 공사를 마무리하고자 유이주가 함흥성 오위장으로 발령이 났을 때에도 축지법을 써서 하룻밤 사이에 천리길을 오가며 작업을 독려했다는 전설도 있다.
또 구례 오미동에는 금환락지와 더불어 3대 진혈인 금구몰니(金龜沒泥, 금거북이 진흙에 묻힌 자리)와 오보교취(五寶交聚, 다섯가지 보물이 쌓인 자리)가 있는데, 유이주가 잡은 터가 금구몰니 명당이라고 한다. 실제로 집터를 잡으면서 땅을 파보니 금구몰니의 명당을 입증이라도 하듯 어린아이 머리만한 돌 거북이가 출토되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이 돌 거북 출토 위치가 안방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부엌에서 때는 불로 거북이 말라죽는다며 명당의 혈자리에 온돌이나 마루가 아닌 물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부엌을 배치하였다고도 전한다.
오보교취는 금, 은, 진주, 산호, 호박 등 다섯 가지 보물이 쌓여 있기 때문에 이곳에 집을 짓고 살면 하늘의 도움으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는 명당이다. 이 세 명당은 오미동 구만리 들녘에서 상대 중대 하대를 이루고 있는데, 이곳 사람들은 서로 자기네 집터가 그 자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운조루 진입로는 다른 전통 마을들의 진입로와 마찬가지로 산허리를 돌며 가는 곡선으로, 집이 보이다 안 보이다를 반복하여 찾는 이를 더욱 설레게 한다.
운조루에 전해오는 〈오미동가도〉와 현재 이 집의 공간 구조를 살펴보자. 먼저 운조루는 대략 1,000평이나 되는 비교적 넓은 대지에, 방형에 가까운 돌담장을 이루고 있다. 남쪽에 연지를 두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대문 앞을 흐르는 시냇물로 일차적으로 외부 공간과의 구역을 정리한 뒤에 대문간과 행랑채가 자리 잡고 있다. 중심부에는 안채를 두고, 남향의 건물군이 동서축으로 길게 배치된 장방형이다. 큰사랑은 서쪽 방향으로, 작은사랑은 남쪽 방향으로 중심채인 안채와 연결되어 있다. 안채는 장독대가 있는 안마당을 중심으로 건물들이 각기 동서남북을 향하여 배치됨으로써 ‘ㅁ’자 형태를 이루고 있다. 아래채와 중문 행랑채가 남향으로 길게 돌출되어 행랑채까지 연결되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소실되었다. 행랑채는 바깥사랑마당과 안사랑마당을 가운데 두고 병렬로 마주 보면서 동서방향으로 길게 배치되어 있다. 이제부터 각 부분들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구불구불 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서면 우선 긴 행랑채와 연못이 있고, 뒷산에서 내려오는 시냇물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고택 앞을 흘러 연지를 지나간다. 연지의 다리를 건너면 행랑채를 양 옆에 세우고 머리를 치켜든 대문이 나타난다. 대문은 배산인 병풍산과 어우러져 그 자태를 뽐내고 있으며 권위와 위계가 느껴지는 듯하다.
대문에는 유이주가 문경새재를 넘다 물리쳤다는 전설의 호랑이 뼈가 걸려 있는데, 이는 벽사의 의미로 잡귀나 병마와 나쁜 일들이 집 안으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함이다. 열린 대문 사이로는 사랑채와 안채로 들어가는 오르막길이 보인다.
운조루에는 세 개의 사랑채가 있었다. 그 중 큰사랑채와 아랫사랑채는 남아 있지만 안사랑채는 소실되었다. 큰사랑채는 둥글납작한 막돌로 쌓은 기단 위에 온돌방과 대청, 누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담 너머 바깥 자연의 변화를 느낄 수 있도록 높게 만들었다. 누마루는 좌우 한 칸을 내민 형식을 갖고 있으며, 북쪽에는 별도의 책방이 있어 학업에 전념하고자 했던 주인의 각오를 느낄 수 있다. 온돌방 앞의 툇마루로 오르는 섬돌은 통나무로 만들어 자연스러움과 소박함을 느끼게 한다. 큰사랑채는 바깥주인의 사회적 교류가 이루어지는 장소로, 주인의 일상적인 거처는 물론 내객들의 접대 및 문객들과의 대화 등을 위한 장소로 이용되던 곳이다. 아랫사랑채는 장성한 아들이 공부하던 곳이다. 반면 안사랑채는 주인 어른 내외가 노년에 집안일은 큰아들에게 맡기고 손자들을 돌보며 말년을 보내는 곳이었다 한다.
큰사랑채에서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 옆으로 난 툇마루 끝부분에 보이는 나무 판문은 안채에서 안대문을 열어 놓고도 사랑이 보이지 않도록 배려한 것으로 아주 튼튼하게 마루 귀틀과 기둥에 붙여 놓아 매우 인상적이다.
큰사랑방의 전면에는 기단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안채로 오가는 사람들이나 사랑마당에서 심부름하는 하인들이 방 안 깊숙한 곳을 볼 수 없도록 머름을 두었다. 건물 내에서는 단 차이를 두어 누마루와 다시 한 번 공간을 구획하고 외부의 모든 문들은 띠살무늬 분합문으로 만들었고, 필요에 따라서는 모든 문을 들어 천장에 달린 고리에 고정시킴으로써 공간의 개폐가 가능하도록 했다. 모든 문을 들어 올리면 밖이 안이고 안이 밖인 것처럼 느껴지는데 이는 남부 지방 가옥의 특징이거나 주인이 자연을 자신의 공간으로 최대한 끌어들이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따뜻함이 그리운 계절에 툇마루에 걸터앉아 책이라도 보면 태양의 따뜻한 온기가 엉덩이로부터 전달되어 포근함을 느끼게 한다.
큰사랑채 뒤쪽에는 별도의 작은 책방이 마련되어 있다. 이 방은 과거를 준비하는 공부방으로, 여기서 공부한 자손들이 5대째 장원급제를 할 정도로 이 집에서는 중요한 공간이다. 일단 방의 위치가 가옥의 뒤쪽에 위치해 외부와 단절되어 있고 안채와도 거리가 있어 가장 구석에 위치하며, 조용한 공부 환경을 조성하기에 알맞게 되어 있다. 방의 출입문 또한 작아 출입을 통제하며, 내부에 들어가 보면 작은 창문 하나와 쪽문이 하나 있는데 창은 이중창으로 되어 있어 한 번 더 외부와 단절되도록 구성되었다. 모든 출구를 자유의지로 통제할 수 있어 공부의 효율성을 증대시켰다.
아랫사랑채는 장성한 아들이 묵는 방으로, 집안의 가훈을 교육받는 장소이자 공부방이었다. 본래는 여기에 행랑과 연결되는 건물이 있었으나 현재는 그 일부가 소실되어 기둥에 연결되던 인방의 맞춤 부분 흔적만 남아있다.
운조루의 안채는 현재 사랑채와의 사이에 있는 중문을 통하여 드나들게 되어 있다. 북쪽에 골방이 붙은 안방은 안주인의 거처이며, 대청은 사랑대청과 마찬가지로 안방과 건넌방 사이에 위치하여 이들 방으로 출입하는 전실의 역할을 하는 동시에 집안의 큰일을 치루는 중심이 된다. 또 주로 자녀들이 거처하는 방과 며느리의 방으로 이용되는 건넌방, 안방의 난방과 주방의 역할을 겸하는 안방부엌 및 평상시 난방만을 하는 건넌방 부엌, 그리고 음식물 및 김칫독을 보관하는 찬방, 곡식을 보관하는 곳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른 고택과 다른 점이 있다면 안채를 중심으로 양쪽의 날개가 2층으로 이루어진 점인데 위계에 따라 형태가 다르게 구성되어 있다. 안채에서 바라볼 때 왼쪽 2층에 꾸며진 다락은 웃어른이 쉬는 장소이고 오른쪽 2층은 아이들과 며느리들이 쉬는 곳이다. 웃어른들이 사용하는 공간은 창의 형태에 좀 더 세심하게 신경 썼고 난간이 있어 아래를 조망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내부에는 밖을 바라볼 수 있는 창이 있다.
안채 부엌은 현재도 사용 중이며 아궁이의 연기로 인해 자연 훈증처리가 되어 벌레가 살 수 없다고 한다. 부엌에 들어섰을 때 매우 어두워 음식이나 제대로 할 수 있었을까 싶지만 사랑뒷마당으로 연결되는 문의 판자 틀 사이의 듬성듬성한 틈으로 햇빛을 끌어들이고 있어 간간이 스며드는 빛이 효과적으로 부엌을 밝히고 있다.
행랑채는 사랑채와 안채의 남쪽에 배치되어 ‘一’자형을 이루고 있는 18칸의 긴 행랑채를 갖고 있다. 행랑 중앙에 배치된 솟을대문을 비롯하여 측면 한 칸 전면 열한 칸으로 된 동행랑과, 일곱 칸으로 된 서행랑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행랑채의 용도는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서행랑의 경우 현재 창고 및 헛간으로 쓰고 있으나 본래는 서단의 두 칸은 가빈터, 세 번째 칸은 마구간, 대문간에서 서쪽으로 첫 문간방은 청지기방이었으며, 그 외의 칸은 노비들의 거처였다. 동행랑은 대문간에서 동쪽으로 세 번째 이하의 칸은 노복들이 거처하던 곳이었고, 다섯번째 칸에는 안주인이 외부로 출입하는 문이 있었다. 이 집의 행랑채에 붙은 측간은 냄새를 줄이기 위하여 바닥을 높이 띄운 2층 형식으로 만들어져 있어 상당히 과학적인 모습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이 집의 특별한 시설로 별도의 초빈이 행랑채 서쪽 끝에 마련되어 있는 점이다. 집안에 장례가 생기면 행랑채 서쪽 끝을 초빈으로 사용했다. 대부분의 사대부 집에서는 행랑채의 서재를 장례 때만 사용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 집에서는 가빈터만의 용도로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초빈인 가빈터에서는 운명 후 3일이 지나 입관한 후 이곳에 3개월 동안 안치되었다가 출상한다. 안치 기간 중 조석으로 상식을 올리고 상망에 제례를 지냈다 하니 가족과의 이별을 얼마나 아쉬워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현재는 거의 텅 비어 있지만, 행랑채만으로도 고택의 규모와 주인의 권세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운조루에서 특히 눈여겨볼 필요가 있는 부분은 주춧돌들이다. 운조루를 떠받치고 있는 주춧돌은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 특징이며, 자연을 해치지 않고 조화롭게 동화하려는 정신이 담겨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중에서 큰 사랑채의 누마루를 떠받치는 누하주를 받치는 주춧돌만 8각 기둥으로 세워 천지인을 뜻하는 천원지방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이는 집 주인의 간절한 염원을 받치는 의미도 갖고 있어 더욱 정감 있는 부분이다. 특히 나무 기둥 아래에 기둥과 벽을 약간 띄워 숨구멍을 만든 것은 남부지방에서 흔히 보이는 방법으로 나무가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다. 아울러 기둥 아래에 하얗게 보이는 것은 건물을 세울 때 기둥의 하단부분이 습기에 취약하므로 소금을 놓고 기둥을 세우기 때문에 생긴 얼룩이다. 이것은 소금버캐라고도 부르며 보존을 위한 과학이 숨어 있다.
주춧돌과 더불어 눈에 띄는 것으로 기둥이 있다. 운조루에는 둥근기둥과 사각기둥이 공간의 기능과 위계에 따라 다르게 사용되어 공간의 격을 달리하고 있다. 둥근기둥은 권위를 상징하여 일반 사대부 주택에서는 사용할 수 없지만 예외적으로 운조루의 몇 군데에서 둥근기둥이 보인다. 큰사랑채 마루와 안채의 전면 마루 부분, 그리고 사랑 뒷마당 옆 독방의 기둥이 둥근기둥이다.
운조루에서는 우리 전통 가옥의 기단 구성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운조루에서는 행랑채와 큰사랑마당 및 안사랑마당이 가장 낮은 위계이며, 다음으로 안채의 남쪽 곳간채, 안마당, 큰사랑채 뒷마당, 안채와 안채부엌마당, 후원, 사당의 순으로 높아진다.
각 공간의 위계에 따라 단 차이를 두어 공간을 정의하였다. 특이한 점은 다른 고택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경사로를 사용한 점이다. 이는 웃어른을 배려한 것으로, 가마가 큰사랑채까지 바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한다.
운조루의 담장들도 볼거리다. 운조루의 담장들은 서로 맞물려 공간을 닫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틈을 두고 있어 동선의 흐름을 이어가며 유기적 연결을 시도한다. 주택의 영역을 한정하는 담장은 시간의 흔적을 나타내고 있으며 자연 풍화된 형태는 자연과 조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선인들의 정신과 닮아 보여 편안하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운조루의 외곽 담은 산의 형태를 그대로 따라 올라가 층을 이루며, 이렇게 겹겹이 쌓아 올려진 형태는 공간의 깊이를 더하고 미적가치를 상승시킨다.
운조루의 문과 창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우선 큰사랑채 방문은 머름을 꾸미어 문지방을 높여 약간 높게 달았다. 머름대는 아래로 불어 들어오는 웃풍을 막고 미닫이문과 덧문의 문틀로서도 사용하는 다기능 부재이다. 문의 형태도 격자형 미서기문의 속문에 겉 문인 세살문을 이중문으로 달아 외부의 온습도 변화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또 우리 전통 가옥에서는 창과 문은 공간과 공간을 연결해 주는 매개체이면서 공간을 공간 속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특히 우리의 전통가옥에서는 공간의 위계나 기능을 건물의 형태에 직접 표현하므로 창과 문의 크기가 다양해 풍경을 실내로 끌어들이는 요소가 되며, 서양 액자가 한 가지 크기라면 우리의 액자는 다양한 크기로 다양한 풍경을 제공한다.
운조루에는 두 가지 큰 자랑거리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글이 새겨진 큰 쌀독이다. ‘누구든 이 쌀독을 열 수 있다.’는 뜻이며, 흉년이 들었을 때 굶주린 사람들에게 이 쌀독을 열어 구제했다는 말이 전해오고 있다. 쌀독에는 두 개의 구멍이 있는데 한 개의 구멍에 꽂혀있는 나무를 돌리면 다른 한 개의 구멍에서 쌀이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여기 꽂혀 있던 나무는 도둑을 맞았다고 한다.
운조루의 두 번째 자랑거리이자 이 집만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굴뚝이다. 운조루에는 첨탑과 같이 하늘 높이 쌓아올린 멋들어진 굴뚝이 없다. 운조루의 굴뚝은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곳에, 눈에 잘 띄지도 않게 숨어 있다. 밥 짓는 연기가 멀리 퍼지는 것을 막고자 함이며, 끼니를 거르는 사람들이 이 집의 굴뚝 연기를 보면서 더욱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라고 한다. 굴뚝이 높아야 연기가 잘 빠진다는 것을 집 주인이나 목수가 몰라서 굴뚝을 이처럼 낮게 만든 것이 아닌 것이다. 작은 것에도 배려를 아끼지 않던 우리 조상들의 아량이 운조루 굴뚝에 남아 있다.
이 가옥은 동쪽 뒷편에 별도의 담장을 두고 사당을 배치하고 있다. 사당은 일각문을 통하여 사랑과 연결되고 안채와는 건너방 부엌문과 연결되어 있다. 사당 건물은 단칸크기로 툇마루를 두고 중앙에 이분합문으로 꾸며진 출입문과 좌우에 격자무늬의 광창이 꾸며져 단아한 모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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