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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래요.

백담사 오세암

by 무던 2019. 10. 5.


영시암에서 오세암-봉정사가는 갈림길

우리는 좌측 오세암으로..


오세암가면 봉정암 마등령가는 길도 있다.


영시암까지는 완만한 길이라면 오세암까지는 약간의 경사가...






오르막길이<깔딱고개> 두번쯤...


반가운 노루귀...이른봄 만났으면 무지 흥분했을듯.


해골모습을한 버섯



























오세암




오세암


시대 고대/삼국
건립시기643년
성격 암자, 절, 사찰
유형 유적
소재지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22-33
분야 종교·철학/불교

요약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설악산 만경대(萬景臺)에 있는 절.

                                 

    개설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에 속하는 백담사(百潭寺)의 부속 암자이다.

    역사적 변천

    643년(선덕여왕 12)에 창건하여 관음암(觀音庵)이라 하였으며, 1548년(명종 3)에 보우(普雨)가 중건하였다.

    이 암자를 오세암이라고 한 것은 1643년(인조 21)에 설정(雪淨)이 중건한 다음부터이며, 유명한 관음영험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설정은 고아가 된 형님의 아들을 이 절에 데려다 키우고 있었는데, 하루는 월동 준비 관계로 양양의 물치 장터로 떠나게 되었다.

    이틀 동안 혼자 있을 네 살짜리 조카를 위해서 며칠 먹을 밥을 지어 놓고는, “이 밥을 먹고 저 어머니(법당 안의 관세음보살상)를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고 부르면 잘 보살펴 주실 것이다.”고 하는 말을 남기고 절을 떠났다.


    장을 본 뒤 신흥사까지 왔는데 밤새 폭설이 내려 키가 넘도록 눈이 쌓였으므로 혼자 속을 태우다가 이듬해 3월에 겨우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법당 안에서 목탁소리가 은은히 들려 달려가 보니, 죽은 줄만 알았던 아이가 목탁을 치면서 가늘게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었고, 방 안은 훈훈한 기운과 함께 향기가 감돌고 있었다.


    아이는 관세음보살이 밥을 주고 같이 자고 놀아 주었다고 하였다.

    다섯 살의 동자가 관세음보살의 신력으로 살아난 것을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하여 관음암을 오세암으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그 뒤 1888년(고종 25) 백하화상(白下和尙)이 중건하였다. 당시 법당을 2층으로 짓고 박달나무로 기둥을 세웠는데, 매끄럽기가 부드러운 명주옷으로 문질러도 결이 일어나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내용

    이 절은 수선도량(修禪道場)인 동시에 유명한 기도도량으로 손꼽힌다.

    아늑한 맛으로는 설악산 내 사찰들 중에서 제일이며, 많은 고승들이 주석했던 곳이기도 하다.


    김시습(金時習)이 승려가 된 뒤 머물렀던 곳이고, 조선 중기 불교의 부흥을 꾀하다 순교한 보우가 수도하였으며, 근대의 고승이자 시인이요 독립운동가였던 한용운(韓龍雲)이 머물렀던 곳이다. 특히, 김시습과 한용운이 이곳에 머물면서 『십현담(十玄談)』의 주석서를 쓴 것은 매우 유명하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과 승방·객사, 새로 지은 산신각이 있고, 옛 절터가 근처에 있어 석물(石物) 등이 남아 있다. 이곳에서 약 2㎞ 떨어진 곳에는 마등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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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 ・ 『명산고찰 따라』(이고운·박설산, 신문출판사, 1987)
    • ・ 『한국의 사찰』14 낙산사(한국불교연구원, 일지사, 1978)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전체항목 도서 소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한국학 관련 최고의 지식 창고로서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과 업적을 학술적으로,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한국학 지식 백과사전이다.



































    절밥도 얻어먹고 시주도하고...



    봉정암 마등령가는 길이 좌측에











    시간이 지났지만 된장미역국에 밥한그릇..



    오세암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에 속한 백담사의 부속암자이다.

     643년 자장율사가 창건하여 관음암이라고 했으며, 1548년 보우선사가 중건했다. 1643년에 설정대사가 중건했는데, 그에 얽힌 관음설화가 전한다. 설정대사는 고아가 된 형의 아들을 키웠는데, 월동준비차 길을 떠나면서 먹을 밥을 지어놓고 4세 된 조카에게 "이 밥을 먹고 저 어머니를 '관세음보살'하고 부르면 너를 보살펴줄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폭설로 인해 다음해 3월이 되어서야 돌아와 보니 죽었을 것으로 여겼던 조카가 목탁을 치며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었다. 이와 같이 5세 된 동자가 관음의 신력으로 살아난 것을 기리기 위해 이곳을 오세암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1888년에 백하화상이 중건했다. 현존 당우로는 법당·승방·객사·산신각 등이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에 속한 백담사의 부속암자이다(→ 백담사). 643년(선덕여왕 12)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하여 관음암(觀音庵)이라고 했다. 1548년(명종 3)에는 보우선사(普雨禪師)가 중건했다.

    1643년(인조 21)에는 설정(雪淨)대사가 중건했는데, 그에 얽힌 다음과 같은 관음설화가 전한다.

    즉 설정대사는 고아가 된 형님의 아들을 키웠는데, 월동준비차 양양 장터에 갈 때 며칠 동안 먹을 밥을 지어놓고 4세 된 조카에게 "이 밥을 먹고 저 어머니(법당 안의 관음보살)를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하고 부르면 너를 보살펴줄 것이다"라 이른 후 새벽에 길을 떠났다. 그러나 장을 보고 신흥사에 도착했을 때 밤새 폭설로 고개를 넘지 못하고 다음해 3월에 돌아오니 법당 안에서 은은한 목탁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어보니 방 안은 더운 기운과 향내로 가득 차 있고 죽었을 것으로 생각했던 조카가 목탁을 치며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었다. 조카가 관음상을 가리키며 "저 엄마가 밥을 주고 놀아주었어"라고 하여 대사는 관음상 앞에 합장하며 예찬을 올렸다고 한다.

    이와 같이 5세 된 동자가 관음의 신력(神力)으로 살아난 것을 기리기 위해 이곳을 오세암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1888년(고종 25)에 백하화상(白下和尙)이 중건했다. 현존 당우로는 법당·승방·객사·산신각 등이 있고, 근처에 석물들이 남아 있다. 이 암자는 설악산에 있는 암자 가운데 제일 아늑하며 김시습·보우선사·한용운 등이 거쳐간 곳으로도 유명하다.
























    하산길에 한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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