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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래요.

척야산2

by 무던 2014. 9. 2.

 

청류정

 

 

 

하트나무

 

 

 

며느리밥풀

 

쌍떡잎식물 통화식물목 현삼과의 한해살이풀.

학명  Melampyrum roseum

분류  현삼과

분포지역  한국(전역)·일본·중국

서식장소  산지의 숲가장자리

크기  높이 30∼50cm

산지의 볕이 잘 드는 숲 가장자리에서 자란다. 줄기는 곧게 서고 가지가 마주나면서 갈라지며 높이가 30∼50cm이다. 잎은 마주나고 길이가 5∼7cm, 폭이 1.5∼2.5cm이며 좁은 달걀 모양 또는 긴 타원 모양의 바소꼴로 끝이 뾰족하고 밑 부분이 둥글며 가장자리에 톱니가 없다. 잎자루는 길이가 7∼10mm이다.


꽃은 7∼8월에 붉은 색으로 피고 가지 끝에 수상꽃차례를 이루며 달린다. 포는 녹색이고 잎 모양이며 자루가 있고 끝이 날카롭게 뾰족하며 가장자리에 돌기가 있다. 화관은 길이 15∼20mm의 긴 통 모양이고 끝은 입술 모양이다. 아랫입술의 가운데 조각에 2개의 흰색 무늬가 있다. 수술은 2개가 다른 것보다 길다. 꽃받침은 종 모양이고 4갈래로 갈라지며 털이 있다.


열매는 삭과이고 길이 8mm 정도의 달걀 모양이며 10월에 익는다. 종자는 타원 모양이고 검은색이다. 변종으로 털며느리밥풀(var. hirsutum) 등이 있는데, 털며느리밥풀은 꽃받침에 긴 털이 있고 포에 가시 모양의 톱니가 많다. 한국(전역)·일본 ·중국에 분포한다.

이곳에서 조금 더가다 노랑망태버섯을보고

그곳은 하산길인것같아 가던방향으로 되돌아나왔다.

 

 

 

 

 

 

백당나무열매

 

 

 

 

 

 

청로각에서 바라본 풍경

 

청로각

 

 

고구려시대의 광개토대왕비 97t, 6m

 

광개토대왕비를 세우면서

 

 충절의 고장인 이곳 홍천군 동창마을은 원래 고구려의 벌력천현(伐力川縣)에 소속된 지역이었다. 산수가 수려 하고 함준한 천혜의 환경에서 배어나온 해맑은 마음씨와 당당한 자주정신은, 동창만세운동의 높은 뜻과 8렬사(烈士)의 숭고한 희생으로 잘 나타나 있다.

 

 특히 이곳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주도한 김덕원 의사(金德元 義士)는 만주 대륙을 호령하던 광개토대왕 (廣開土大王)의 불굴의 기상을 항일운동의 정신적 바탕으로 간직했던 투사였다. 동창만세운동에서 드러난 거룩한 뜻과 김덕원 의사의 불굴의 애국사상을 후세에 전하고 민족의식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여기에 광개토대왕비를 재현하여 세운다.

 

 고구려 수도였던 중국 길림성 집안시(集安市)에 남아있는 광개토대왕비는 고구려 제20대 장수왕 (張壽王413~491)이 아버지인 광개토대왕(391~413)을 기리기 위해 414년에 세운 것이다. 높이6.39m의 거대한 비석으로 4명의 모양이 달라서 1면과 3면은 거의 직사각형 모습이고 2면과 4면은 기둥과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다. 1880년대에 비석이 발견된 이후 1927년에 비정(碑亭)을 세웠으며 1982년에 현재의 비각(碑閣)이 세워졌는데, 1,600여년의 오랜 세월이 경과하면서 비석을 떠받치고 있는 대석(臺石)은 3부분으로 깨지고 일부 침하됨으로써 비석이 약간 서북쪽으로 기울어져 안정성이 약해졌다. 2004년에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위해 주변을 정리함에 따라 인접해 있는 태왕릉까지 함께 볼 수 있게 되었다.

 

  비석에 현재까지 담아있는 글자는 1,770여자(字)인데 없어지거나 확인되지 않는 글자가 많고 현재와 다른 문자(別字體)가 있으며 더구나 일본측의 비문 조작 등으로 비문 해석에 어려움이 많았다.

 

 비문은 첫째; 신의 아들인 주몽의 출생과 초기의 역시, 둘째; 광개토대왕의 7방향 정복과정, 셋째; 왕 사후의 능지기 규약등으로 되어있다. 보이지 않는 글자와 띄어쓰기 문제로 연구자간의 견해가 달라서 해석상의 차이가 있어왔지만 박시형(朴時亨) 이후 천관우(千寬宇), 이진희(李進熙) 선생의 노력으로 큰 틀이 짜여졌고, 이어서 이형구(李亨求), 서길수 (徐吉洙), 서영수(徐榮洙), 임기중(林基中)교수 등의 연구로 해석이 가능해졌다.

 

여기에 세운 비문의 해석은 중국 현지에서 평생을 비문연구에 바친 연변대학교 박진석(朴眞奭) 교수의 석문 (釋文)을 바탕으로 하되 일부는 보완 하였으며, 서체는 중국인(漢族)으로 광개토왕비 서법을 현대에 구현한 진유국(秦維國:好太王 서법관장)선생의 태왕체(太王體)이다.

 

이곳에 광개토왕비를 세우는데는 가능한 건립 당시의 본래 모습을 찾고자 하였다. 비석의 크기는 약간 크게 만들어서 원래의 비문이 비석 끝부분까지 새겨져있어 보기가 흉한 점을 보완함으로써 전체적인 규형미를 갖추도록 하였다. 기단부의 대석도 처음과 같이 깨어지지 않은 판석(板石)으로 재현함으로써 원형에 가까웁게 마련하였다.

 

 이러한 광개토왕비 재현작업은 만세운동의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이화여자대학교 신형식(申瀅植) 명예교수 (현재 서

 

특별시사편찬위원회위원장)의 수차에 걸친 현지 답사 및 박진석 교수 대화를 통한 지도에 힘입어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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