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말인 1380년. 조선의 3대 임금이 될 13살된 소년 이방원이 아버지인 이성계와 횡성 강림면에 있는 각림사로 공부하러 왔다. 그는 이곳에서 은거하던 원천석을 스승으로 삼아 가르침을 받았다.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맺은 것이다.
그들은 각림사(강림우체국 부지)에서 공부하며 부곡계곡 바위(태종대)에 올라 호연지기를 길렀다. 이방원은 5년후 문과에 급제했고 15년 후인 1400년에 조선 3대 임금(태종)에 오른다. 그러나 그의 스승은 고려왕조에 대한 충성으로 다시 강림면에 은거한다.
제자는 왕위에 오른지 15년째인 1415년 스승에게 관직을 주기 위해 강림지역을 방문했다. 제자는 스승을 만나고 싶었고,30년 전 어릴때 공부했던 곳도 보고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스승은 제자와의 만남을 피했다. 그래서 제자가 도착하기 전 태종대와 600m 정도 떨어진 냇가에서 빨래하는 노파에게 어떤 사람이 도착하면 자신이 간 반대방향으로 길을 알려줄 것을 요청했고,이 노파는 원천석이 시킨대로 거짓말을 했다.
이 노파는 자신이 거짓말한 사람이 임금이라는 사실을 알고 죄책감을 이기지 못해 물에 빠져죽었다. 노파가 빠져 죽은 곳은 노고소(老姑沼)라고 불리고 있다. 강림지역 주민들은 노파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노구사당을 짓고 매년 제사를 지내고 있다.
제자는 태종대 바위에서 7일동안 스승을 기다리다 결국 만나지 못한채 한양으로 돌아갔다. 스승은 제자가 3번이나 강림을 찾아와 만나줄것을 부탁했으나 끝내 거절했다고 한다. 태종이 머물던 곳은 주필대로 불러오다가 후대에 태종대라고 고쳐 불렸다. 지금도 태종대안에 주필대라고 새긴 비석이 있다. 절벽아래 바위에는 1723년(경종3년)에 새긴 태종대 글씨가 있다.
그후 제자는 상왕으로 물러난후 스승을 다시 불렀다. 스승은 더이상 거절할 수 없어 입궐했다. 하지만 상제처럼 흰옷을 입고 들어가 만났다.
그러나 제자는 이에 상관하지 않고 어릴 때 스승과 함께 공부했던 곳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제자는 스승을 만나려 오기 1년 전인 1414년 ‘횡천(橫川)이 홍천과 발음이 비슷해 혼돈스럽다’며 ‘횡성(橫城)으로 고치라고 명했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의 횡성군이 탄생했다. 이것도 제자의 스승에 대한 각별한 애정의 표시로 볼 수 있다.
태종이 스승을 만나기 위해 강림을 방문한 지 600년을 맞아 지난달말 태종대를 찾았다. 태종대 주변은 소나무와 참나무 등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낙엽이 떨어진 나무는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었다. 태종대 앞은 도로가 있지만 오가는 차량이 거의없는 산간벽지였다. 600년 전 임금이 방문했다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심산유곡이었다. 태종대에 올라서니 임금인 제자가 스승을 만나려고 방문했던 간절함이 절로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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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종대비각 |
태종대 인근에 있는 소나무와 늙은 밤나무의 가지 사이로 바람소리가 날리고,태종대 절벽 20m아래로 흐르는 부곡천의 굽이치는 물소리가 600년 전 사제 간의 애틋한 정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릴 때 순수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스승을 찾아 수백리길을 왔지만 끝내 스승을 만나지 못한 채 다시 한양으로 가야했던 제자의 마음은 어땠을까. 또 어릴 때 순수했던 제자를 일부러 만나지 않으려고 거짓말까지 했던 스승의 마음은 어땠을까. 애잔한 생각이 들었다.
제자는 스승이 있을 만한 곳을 향해 큰 절을 하며 스승에 대한 존경을 표시한 후 떠났다.
스승은 자신은 고려를 위해 충성을 했으나 제자들에게는 “조선을 위해 충성을 다하라”고 말한 대목에서 사제간의 애틋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횡성/권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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